우리 사는 것이 영락없이 훨훨 날아다니다 약속도 없었던 어디에 내려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민들레와 닮았다. 어린 것들만 그런 줄 알았더니 나이 먹고 보니 홀씨 다 떠나보낸 허전한 꽃대가 바로 아이들 다 내보내고 노인들만 남은 우리 부부와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어찌 가족관계만 그렇겠는가. 공무원 객지 생활 십수 년에 목회 30년, 사실 평생 목회를 마치고 교회를 떠나니 교인들과의 관계가 거의 끊어지고, 함께 했던 기관이나 사람들과도 안부를 모른다.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허전함이 노년의 모습이라 생각하면 옳을 것 같다.

『민들레 홀씨 되어』 내가 두 번째로 내놓은 시집 제목이다. 캐나다로 이민 간 딸네 다섯 살 아들, 그러니까 외손자가 태평양 건너고 로키산맥을 넘어 에드몬톤(Edmonton)이란 곳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적응하는 것이 참 어려워 보였다. 혹심한 몸살이고 홍역이었던 같다. 곁에서 지켜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눈물이고 아픔이었다. 왜 좋은 직장 버리고 타국에 와서 이런 고생을 하며 이민을 결심했을까 안타까웠다.

아들만 데리고 먼저 떠나온 딸은 어학연수에 나가니 외손자를 아동시설(데이케어)에 데려다주어야 했다. 「민들레」라 제목 하여 마음을 담았다.

캐나다 에드먼턴/ 5월 눈발 날리는 풀밭/ 노랗게 핀 민들레/ 다섯 살 외손자 닮았다// 영진아/ 이 꽃 어디서 왔을까?/ 할아버지는 알아요?/ 그래, 우리 한국서 하얀 홀씨가/ 바람 타고 훨훨 태평양 건너/ 너희들 따라왔지// 탁아소 앞/ 내 손 꽉 붙잡는 꼬막손 떼어/ 흑인 교사에게 맡기고 들아 서며/ 아가, 한국으로 돌아가자/ 아니다. 독해야 해/ 눈물을 목구멍에 구겨 넣었다// 너는/ 흑백 벌판 민들레/ 강인하여 번성하리라

이런 산통(産痛) 없이 이민(移民)이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몇 주 만에 귀국했고, 제 어미가 이 모든 것을 감당했으니 고생이 막심했을 것이다. 그렇게 성장해서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여러 나라 아이들과 잘 어울렸고, 금년 가을이면 중 3학년이 된다. 저희 부모의 자식 양육 열정도 특심한 것 같다. 동네 아이들이 어울리는 축구, 야구, 하키도 잘 어울린다. 이런 성장을 바라보면서 「민들레·3」을 썼다.

후~욱 불면 날아갈/ 하얀 새털 같은 홀씨/ 낙하산 활짝 펴고 바람 기다린다// 지나는 바람 붙잡고/ 훨훨 날아 / 논밭이나 들판에 / 이름 없는 섬이나 산에 / 인종 다른 먼 나라에/ 뿌리내려 꽃피워라// 엄마 손잡고 / 캐나다 로키산맥 아래로 이민 간/ 외손자 영진이처럼/ 넓은 세상 훨훨 날아/ 희망의 땅에서 꿈을 펼치거라

이민 초기 낯설고, 말 안 통하고, 엉뚱한 생활이 지구 소년의 별나라 같았을 것이다. 할애비로 하여금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하더니 지금은 멋진 소년이 되었다. 영락없이 나의 안내자가 되어준다.

아들도 캐나다에 유학하여 졸업하고는 그곳에서 출생한 한국인 2세와 가정을 이루었다. 누님과 한 동네에 살게 되었고, 남매를 낳아서 초등학생으로 키웠다. 두 집 아이들이 썩 잘 어울린다. 한국말이 서툴러서 대화를 잘 하지 못하지만 가슴에 안겨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하다. 착하고, 질서 잘 지키고 건강한 캐나다 심성의 아이들로 자라는 것이다. 지난여름, 캐나다에 2개월 있으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성경 말씀처럼 범사에 감사이다.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이다. 광주에 살면서 부모와 동기들 간에 중심이 되어주는 큰 딸과 삼 남매 자녀들이 힘이고 버팀목이다.

가족만이 아니다. 이 나이 되도록 함께 했던 분들도 민들레 홀씨처럼 다들 떠났다. 고향 사람들과 일찍 헤어졌고, 10년 넘는 공직생활 동료들 그리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초년생으로 나서며 교회를 개척하고, 어려운 시절을 함께 했던 교인들과도 헤어졌다. 교회 사택을 떠나 멀찍한 아파트에 옮겨 산다. 은퇴한 후로 대학교 강사로 나서 가르쳤던 제자들도 훨훨 떠나버렸다. 어디에선가 살고 있을 그분들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그렇지만 성실하게 여기까지 왔다는 어떤 홀가분함이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보람으로 느껴진다.

써두었던 글을 모아 ‘제2시집’을 내면서 『민들레 홀씨 되어』 시집 제목을 쉽게 찾았다. 나의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이고 우리들의 추억이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내가 틈틈이 카메라에 담아두었던 배경을 책에 담았다. 문학에 하릅송아지에 불과한 늙은이 시인의 기도는 이렇다.

“이 책을 보는 이들에게, 읽는 이들에게 은혜 되게 하옵소서.”

- 2018년 8월 다 가고 9월 첫날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교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