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23) 제22차 영성수련회 폐회예배

사무엘상 4장 19~22절, 7장 3~14절
 
모세가 기초를 세우고, 여호수아가 건국한 이스라엘 나라가 영토는 좁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단결심으로 국세는 날로 번창하고 흥왕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사 엘리시대에 이르러서는 엘리가 늙었고,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위세를 믿고 그 행위가 악했기 때문에 지도자들은 민심을 잃었고, 불레셋의 침략이 더욱 강화되어 이스라엘 나라가 위기를 만났습니다.
불레셋과 전쟁이 일어나 패전이 계속되므로 승전할 계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하나님의 언약궤를 싸움터로 가져오면 이기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패전했습니다. 이 패전으로 언약궤는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은 전사했고 엘리도 패전 소식을 듣고 죽었습니다. 때마침 엘리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한 아이를 해산하다가 패전 소식을 듣고는 죽어가면서 산파들에게 그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말해 주고는 숨을 거둡니다. 그래서 이 시대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가봇 시대가 되었습니다.

I.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가봇 시대
그러면 왜 이가봇 시대가 되었습니까?

(1) 신앙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선지 엘리는 늙고 노쇠하여, 기도하는 한나를 술 취한 여자로 오해할 정도로 정신이 혼미했고, 불량한 아들들의 소행을 금지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 뿐인가?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하였으니, 일반 백성도 아닌, 성직자 계열이 하나님을 알지 못할 지경에 떨어졌다면, 그 시대의 신앙이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사이 말로 말하면, 교회 성직자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우리 기독교 세계에서 “하나님이 없다”는 종교인이 있거나 “하나님이 죽었다”는 신학자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교역자가 있다면, 그 시대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시대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보면, 비록 사신론을 주장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부활을 믿지 않고, 영생을 믿지 않으면서도 기독교 지도자 노릇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세계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가봇 시대가 되었는데도, 전쟁터에 언약궤가 당도하게 되자, 사람들이 큰 소리로 외쳐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신앙 없는 종교인이나 민중이 떠든다고 무슨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믿기보다 군대를 더 믿었고,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하기보다 법궤 그 자체에 어떤 기대를 걸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가만히 보면, 내용 없는 종교일수록 떠들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대중 집회를 열고, 떠들지만, 신앙 없이 모여든 사람들로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신앙도 없는 사람들을 많이 모아놓고, 종교 선전을 한다고, 무슨 일이 될 것 같은가요? 그런 의미에서 본인은 작금에 우리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이가봇 시대가 될까 정말 두렵습니다.
 
(2) 지도자가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이가봇 시대가 된 원인은 종교와 사회의 지도자들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회막문에서 수종 드는 여자와 동침했다”하였으니, 성직자가 성전에서 불륜의 관계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성직자가 성전에서 추잡한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성직자의 생활이 이러하니, 평신도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지도자 엘리가 매우 늙었다고 한 것은 나이가 많아 신체적으로 늙었다는 말도 되겠지만, 지도력이 노쇠했다는 의미도 될 것입니다. 지도력이 노쇠했기 때문에 아들들의 악행을 듣고 책망을 했으나, 그 말을 아들들이 듣지 않았습니다. 엘리의 말을 그들이 듣지 않았던 이유는 엘리 자신이 말은 옳게 하지만, 그 생활이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종교가와 지도자들이 부패하고, 지도력을 상실하였으니, 이가봇 시대가 된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가 부패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이가봇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기 때문입니다.
종교가 탐욕과 음란으로 부패하고, 지도자의 지도력이 상실되고, 고집만 늘어가는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지는 암흑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법궤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제사장이 있어도 영감이 없고, 법은 있으나 법대로 운영이 되지 않고, 지도자는 있으나 백성들이 그 지도를 받지 않는 시대는 암흑시대입니다.
엘리 말년의 사회상과 종교상이 이러하니 사람마다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암흑시대가 되었다. 제사장은 있으나 그를 따르는 자가 없고, 지도자는 있으나 그의 소리를 믿으려고 하지 아니하니,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는 이가봇 시대가 되었습니다.
종교계와 사회상이 이렇게 타락하고서는 나라가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사람이 없으니,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진 시대가 되었습니다.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날 그 날의 일기의 온도를 알기 위해서는 온도계를 살펴야 하듯이, 그 시대상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소리를 전하는 선지자가 입을 다물고, 백성들은 귀를 막아버리면, 이런 때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는 이가봇 시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II. 어두운 시대라도 희망은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어두운 시대라 할지라도 희망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아무리 어두운 시대라 할지라도 결코 절망해서는 안 되고, 또 절망할 이유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인류 역사가 인간들의 손에 있다면야, 어느 모로 보든 소망이 없어 보이는 시대를 만나게 되면, 우리가 얼마든지 낙심천만하고, 좌절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분명히 믿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세계 역사는 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진행됨을 믿습니다.
따라서 시대가 아무리 어둡고, 절망스러운 시대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중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인물들을 준비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새롭게 시작하시는 것을 우리는 성경 안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고, 또 세계 역사를 통해서도 보아왔습니다.
따라서 이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믿는 기성세대에게는 주어진 사명, 즉 책무가 있습니다. 특별히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더 큰 사명과 책무가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우리는 시대가 이렇게 어둡고 암담해져 가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고, 나 하나의 믿음만 겨우겨우 근사하다가 떠나가고 마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가봇 시대나 다름이 없는 이 어두운 시대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과 책무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믿음의 다음 세대가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또 기필코 그들을 길러내야 할 사명과 책무가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이가봇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 한낱 희망이 있었던 것은 성전에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은 완전히 꺼지지 아니했고, 소년 사무엘이 여호와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서 희망이 있었습니다. 엘리는 노쇠했지만, 어린 사무엘은 성전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타락해도, 성전의 촛불이 아주 꺼지지 않았었기 때문에 소망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민족적 위기와 신앙적 위기에 대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가봇 시대라고 낙심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을 비판만 하고, 남 탓만 하고 있지 말고, 우리 교회 안에 기도하는 사무엘이 있고, 신앙 운동을 일으키는 사무엘이 있으면, 나라를 위기에서 건질 수 있고, 종교를 부패에서 소생시킬 수 있음을 믿고,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인이 감히 단언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나라와 한국 교회를 사랑하시므로, 사무엘 같은 사람이 지금도 어디에서인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도록 역사하고 계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않고, 또 이들을 책임지고 길러내는 데 최선을 다 하면, 우리 한국교회에도 이가봇 시대가 끝나고, 여호와만 섬기는 시대가 다시 올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그 날을 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III. 기성세대인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성세대인 우리로 인하여 다시 한 번 더 우리 한국교회에 에벤에셀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 지도자들에게 있습니다. 사무엘이 엘리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었고, 기성세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라 형편은 암담하기 짝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드디어 중대 결심을 합니다. “이 백성을 하루빨리 구원해야 되겠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명령을 했습니다. “우리 모두 미스바로 모이자!” 미스바에 모여서 하나님 앞에 먼저 회개하고, 제사를 드린 다음에 드디어 그들을 치러 올라온 불레셋 군대와 큰 접전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제대로 된 무기도 없었습니다. 기껏 해야 막대기를 들고 나가고, 괭이를 들고 나가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있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나가 싸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날 이스라엘에게 놀라운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불레셋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키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땅에 에벤에셀의 역사가 일어났었습니다.
사랑하는 한국교회 지도자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에 절실한 것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을 믿는 우리 크리스천들을 통해 이 땅에 다시 한 번 더 에벤에셀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자,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이 에벤에셀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는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요?

(1) 무엇보다 먼저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
7:3이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불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그랬습니다. 이건 “회개하라!” 그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다 내버리고, 미스바에 와서는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면서, 회개를 합니다.
회개를 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했나를 보겠습니다. 6절에 먼저 무엇을 하나님 앞에 갖다 부었는가요?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물을 갖다 부었습니다. 여러분! 회개를 하는데, 왜 그 앞에 물을 갖다 부었을까요? 무슨 뜻인가요? 예레미야애가 2:19에 보면,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네 마음을 주님의 얼굴 앞에 물 쏟듯이 할지어다!” 또 시편 62:8에는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물을 갖다 붓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데, “하나도 남김없이, 철저하게, 겸손하게 완전히 하나님 앞에 내놓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물을 붓는 것은 “주여! 내가 지금 다 쏟아놓은 물처럼 되어 하나님 앞에 섰나이다. 내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나이다. 모든 것 다 주님께 회개합니다.”하는 철저한 회개를 나타내는 행동입니다. 또 그들은 금식하면서, 과거의 죄를 생각하고, 고통하고, 괴로워하면서, 하나님 앞에 입을 열고, “주여!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하고, 회개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회개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저들을 도와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보면서, 깨달을 수 있는 게 뭔고 하면,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들이 에벤에셀의 은총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회개를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잘 도와주지 않습니다. 좋은 예가  미스바 사건이 일어났던 바로 이 현장에서 20년 전에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불레셋하고 전쟁이 붙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 군대가 집결해서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이스라엘이 비참하게 불레셋 말발굽 아래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너무 급하니까, 성막에 안치해 두었던 법궤를 메고 왔습니다. 그들 생각에는 “이 법궤를 메고 오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할 것이다”하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법궤는 빼앗기고, 엘리는 목이 부러져 죽고, 그 두 아들은 전쟁터에서 칼날에 쓰러지고 말았으며, 이스라엘 군대는 거의 다 몰살을 당하고, 남은 자들은 산산이 흩어져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바로 20년 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러면, 그 때는 왜 하나님이 그의 백성이 그렇게 곤궁에 처했었는데도 도와주지 않았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회개하지를 않았습니다. 급하니까, 법궤를 메고 나가기는 했지만,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도우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이 다시 한 번 더 에벤에셀의 축복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면, 우리 크리스천들이, 특히 우리 지도자들이 철저하게 회개하는 진정한 회개운동이 일어나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2) 그리고 이 땅에 에벤에셀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한다면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했기 때문에 에벤에셀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9절 끝부분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여러분! 부르짖는 기도는 절대로 보통 기도가 아닙니다. 언제 부르짖는가? 급할 때 부르짖습니다. 언제 부르짖는가? 위기를 만날 때, 자기도 모르게 지르는 소리가 부르짖는 소리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부르짖는 기도를 제일 많이 한 사람은, 역시 다윗 왕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해도, 평범한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도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급하다, 급하다 해도, 부르짖는 기도를 안 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덜 급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부르짖지 않으면,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르짖지 않는 사람은 준비가 안 된 사람입니다. 부르짖는 사람은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 가정을 위해서, 내 교회를 위해서, 한국교회를 위해서, 우리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부르짖음으로 말미암아 에벤에셀의 기적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 모두가 자기를 살피고, 회개가 안 됐으면, 회개하는 시간, 헌신이 안 됐으면, 헌신을 다짐하는 시간, 기도하는 생활이 게을렀으면, 기도하는 생활, 그 다음에 노력이 부족했으면, 노력을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언제든지, 임할 수 있도록, 막힌 데가 없도록, 깨끗이 뚫어놓고, 남은 생애를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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