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죽으리라' 안이숙 이야기

목포는 ‘눈물’이다. 세월호가 맹골 수로에서 침몰((1014. 4. 16)한지 1073일 만에 인양되어 목포 신항으로 돌아왔다. 미수습자 가족들과 전국에서 추모객이 몰려오면서 모두가 분노와 애간장 끓는 슬픔과 눈물이 부두를 적시고 있는 것이다. 봄 축제가 취소되고 거리마다 노란 추모 현수막과 추모 리본이 걸리고 빗물처럼 비 내리는 곳이 항구 목포이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데/ 부두에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이난영이 애절하게 불렀던 '목포의 눈물’이다. 깊은 한을 술술 풀어내듯 불렀던 이 노래를 남도 사람들은 지금도 즐겨 부른다.  초등학교를 중퇴한 난영이 제주도에서 일본인 가정부로 살고 있는 어머니를 찾아갔다. 주인은 난영이가 아이들을 돌보며 흥얼대는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랐다. 썩혀서는 안 될 그런 소녀였다. 극장을 하는 그가 난영이를 극이 시작되기 전에 노래를 부르게 했다. 막간 가수였다. 열댓 살 앳된 소녀, 서러움으로 가득 채워진 그녀의 눈물 노래가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조선일보가 애향가를 공모했을 때(1934년) 문일석이 지은 ‘목포의 노래’가 뽑혔고, 그 가사에 손목인의 곡을 붙여 ‘목포의 눈물로’ 제목을 바꾸어 무명 가수 이난영이 노래했는데 대 히트였다. 이난영이 가수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것이다.

이어서 ‘목포의 눈물’을 간증한 안이숙의 이야기를 이어보련다.

그녀의 자서전 『죽으면 죽으리라』에 목포의 간증이 있다. 일제 때 ‘험한 이 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내미사 내 손잡아 주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 길 주옵소서’ 찬양하며 옥중생활로 믿음을 지켰다.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믿음을 지킨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였던 것이다.

조국 광복의 감격을 안고 1945년 8월 17일 감옥에서 나왔다. 출옥 성도들과 함께 가정과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 감격은 잠깐이었다. 밀려온 소련군의 횡포와 공산당의 교회 압박이 심해졌다.  어느 날, 소련군 장교의 잔치 초청을 거절할 수 없어 참석했다가 자신을 모스크바로 납치하려는 것을 눈치채고 보선 발로 도망쳐 나왔다. 그 길로 남행을 결심했다. 평양을 떠나 해주로 갔다. “고향과 집과 소유를 다 내어버리고 정처 없이 낯선 땅으로 흘러가야만 하는가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설움이 복바쳐서…분하고 슬프기만 했다.”

몇 명 청년들 안내로 어머니와 함께 비가 쏟아지는 3․8선을 넘었고 미군들은 찬송가를 부르는 그들 일행을 통과시켜 주었다. 모녀가 서울에 머무르며 얼마 동안은 지참한 돈으로 생활이 되었으나 앞길이 막막했다. 옥고에 몸이 약해진 안이숙은 살아갈 수 없었다. 그녀의 글이다. “결혼하기도 어려웠다. 피가 부족하고 심장이 약해서 숨쉬기가 힘들고 기침도 아직 쉴 새 없이 계속 나서 내 몸도 감당하기 힘드는데 시집살이는 도저히 가망이 없어 보였다.” 결혼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영육이 약해져 있었다.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 인생의 갈림길에서 서성이고 있었던 것이다. 기도하고 싶었다. 바닷가 어디든지 가서 기도하리라 작정했다. 그렇게 탄 것이 호남선 기차였고 내린 곳은 종착역 목포였다. 초행길에 이곳저곳 헤매다가 어느 바닷가 바위 위에 올라앉았다. “나는 바위 위에 엎드려 주님을 대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우선 실컷 울었다…야만인 소련군과 자기만 위하는 공산세계의 탄압에서 살 수 없어 이 산 설고 물 선 서울에 오기는 왔지만 주님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내 앞에 살길은 딱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땅에 발붙일 곳이 없어졌습니다. 폐인처럼 되어버린 이 여종에게 주님은 무엇을 더 찾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제가 더 살아 기동해야겠아오면 그 할 길을 마련해 주셔야겠습니다.” 그녀의 기도이다. 밤을 새웠다.

서울로 돌아오니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미국인 자매 필리스 코오(Philis Coe)였다. “아! 당신은 미국에서 굉장하게 이름이 났는데도 당신 자신이 어떤 이인가를 모르시는군요. 당신은 미국에 가야 하는데…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초청을 받아 석 달 예정으로 어머니 전송을 받으며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하나님께서 ‘목포의 눈물’로 기도했던 안이숙을 또 다른 사명의 땅 미국으로 보내신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교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