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22) 제21차 영성수련회 저녁집회

마태복음 5:38-42

'교갱협'이라는 모임은 다른 교단에서는 벌써 사라졌는데 합동 측은 생명이 참 기네요. 참 부럽습니다. 목회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고민 없는 목회를 하기 때문에 오늘 많은 문제들이 나오는데 여러분들을 통해서라도 한국교회가 좀 더 무게를 잡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를 합니다. 좋은 열매 맺힐 줄로 믿습니다.

오늘 제가 이상한 본문을 택했습니다.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한 분이 거의 없고, 설교하기가 굉장히 꺼림직한 본문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 우리 모두 주님의 걸어가신 길을 되돌아보고 우리 목회를 한번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결혼할 때는 사람의 키를 보고, 조건을 보고, 생김새를 봅니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속는 겁니다. 결혼생활 20년차 주부들을 모아놓고 조사를 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느꼈던 기준하고 무엇이 다르던가? 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대답하기를 조건도 아니고 생김새도 아니더라. 20년 살아보니 그런 것들은 문제가 안되더라. 문제가 되는것은 성품이더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옳습니까? 오늘 사회에서, 회사에서, 직장에서 사람을 뽑을 때 그 사람 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가 하는 것은 관심도 없습니다. 조건을 보고 학벌을 봅니다. 그래서 속습니다. 가끔 운명적인 문제를 앞에 놓고 갈림길에 섰을 때 그때 우리 생각 속에 무슨 생각을 떠올리냐 하면 이럴 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판단하셨을까? 를 생각하는 때가 있습니다.

30년 전에 100대 기업 중에 오늘까지 살아남은 건 14개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동안 다 소멸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300만 개라는데 수명이 11.3년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10년마다 소멸되고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그동안 대기업의 수명은 29.1년으로 보았는데 근래에는 대기업도 수명이 15년밖에 안 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정없이 도태되는 것이죠. 30년 전에는 상당히 컸던 교회가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아주 보잘것없는 교회로 추락하고 그동안 신생교회들이 성장해서 대교회로 부흥했습니다. 우리가 눈앞에서 보는 현실이잖아요. 그러니까 경영을 잘 해야 합니다.

회사 경영도 잘하고, 나라 경영도 잘하고, 가정 경영도 잘하고, 교회 경영도 잘해야 합니다.  목회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로리 벤슨 존스라는 사람이 20년 동안 예수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연구 결론은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는 탁월한 경영자였다입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라한 자리에서 초라하게 시작했습니다. 제자가 12명에서 그 다음 70명으로, 70명이 120명으로, 120명이 3,000명으로, 5,000명으로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남겨놓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 예수의 추종자들, 신앙인들, 제자들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근데 그 예수님의 제자는 명분만 제자가 아니라 그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헌신하고 투사하고 그리고 열정을 다해 그분을 섬기는 그런 사람들로 만들어진 것이죠. 다른 종교에 비해서 얼마나 강합니까. 그렇게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예수의 제자가 되고 순교하면서까지 예수를 증거하도록 한 그 성공 비법이 무엇이냐?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하였기에 이 세상에 퍼져있는 제자들이 그냥 명목의 제자가 아니라 목숨을 바쳐서 헌신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의 방법을 좀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방법을 우리가 흔히 역설의 방법이라 합니다. 역설의 방법. 이제는 한국교회가 역설의 방법을 도입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린 예수님의 제자요 예수님을 따라서 목회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까지 역설의 방법으로 목회를 한 것이 아니고 솔직히 말해서 내 방법으로 목회를 했습니다. 예수님의 방법으로 목회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문제가 발생하고 갈등이 발생하는 곳에 가보면 예수님 방법으로 목회하지 않습니다. 다 내 방법으로 했기 때문에 갈등과 불화가 있고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역설의 방법입니다. 오늘은 이 부분을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본문에서 말씀을 이렇게 합니다. "겉옷을 달라 하는 사람에게 속옷도 벗어주고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대라. 오리를 가자는 사람에게 십리를 동행해주고 꾸는 사람에게 거절하지 마라." 이 말씀을 역설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는 전혀 안 맞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역설이라고 합니다. 현실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게 진짜 방법입니다. 죽어야 사는데. 내가 죽으면 사는데 근데 그게 방법은 방법인데 그게 너무 역설이기 때문에 그 방법을 두려워했어요. 근데 이제는 내가 살기 위해 죽을 때가 되었고 내가 성공하기 위해 넘어질 때가 되지 않았나? 역설의 길로 들어서야 되지 않겠나?

예수님은 성공했는데 예수님은 철저하게 준비하셨습니다. 이것도 역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데 철저하게 준비를 해요. 예수님은 3년이라는 공생애를 위해서 30년을 준비합니다. 우리 신학교 다닐 때에 보니까 1년 다니고 개척하더라구요. 졸업하고 해도 충분한데 준비가 안 되었는데 개척을 나갑니다. 예수님은 3년을 위해서 30년을 준비했습니다. 무엇을 준비했냐면 첫째는 세례를 받는 것을 준비했고 세례를 수직적인 관계라는 거잖아요. 또 하나는 40일 금식을 했어요. 엄밀하게 말하면 금식이 아니라 단식입니다. 광야에서 물 냄새조차 맡지 않고 밤에는 추위 속에, 낮에는 더위 속에 40일 단식, 금식하는 분들이 많은데 왜 꼭 40일이냐고 물으면 예수님은 그렇게 했기 때문에 한다고 합니다. 역설의 방법을 흉내는 안내고 예수님이 40일 했으니 나도 40일 하겠다고 하니 여기서부터 병이 나는거죠. 그러고 나서 시험을 받잖아요

예수님이 다음 단계로 무얼 했느냐 하면 제자를 선택했어요.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통해서 세상을 전도하시면 잘 하실 꺼에요. 예수님이 나가서 전도하시면 못할 게 뭡니까. 그런데 하나님과 예수님은 당신이 나서서 직접 전도하고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우리들을 불러서 훈련시켜서 무지하고 불안정한데도 우리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예수님은 혼자 일하시지 않고 제자를 선택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오늘날 우리들은 얼마나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엊그제도 어떤 집사가 얼마동안 안 보인다 왔는데 목사 안수를 받았데요. 그 사람에게 안수 준 기구가 어디인지 문제가 되는 겁니다. 준비도 안 되었는데 충분하게 준비해도 어려운데 하나님의 일을 이렇게 쉽게 생각하는가? 입시에서 두 번, 세 번, 네 번, 떨어지면 신학교나 가라고 하니 거기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데도 철두철미하게 준비하셨습니다. 역설이죠.

예수님의 제자들을 선택하는 과정을 보면 우리하고 생각이 달라요. 저도 참 웃기는 사람이에요. 저도 부목사 선택할 때 이 방법 안 썼거든요. 조건을 보고 얼마나 똑똑한가. 그러니까 시간이 흐른 후에 속는 거에요. 언젠가 속았으면서 지금 또 속고 있는 거에요. 얼마 있으면 또 속을 꺼에요. 이걸 우리들이 극복을 못하고 있어요. 회사에서 사원을 뽑을 때, 배우자를 선택할 때, 목회자를 뽑을 때, 똑똑한 분을 뽑으려고 해요. 그러면 목사가 안 됩니다. 목사는 똑똑하면 안되요.

학위 가진 사람을 좋아해요. 목회자들은 여기저기 가서 학위들을 너무 얻으려고 애를 쓰는데 그거 교회 신자들 중에 정식 학위 가진 사람들이 몇 명만 있어도 우리 목사님 웃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배에서 설교하러 올라갈 때 박사가운 입고 올라갑니다. 우리 목회자들한테는 학벌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어요. 참 제가 뼈아픈 지적을 합니다만 목사님들 학벌에 대한 컴플렉스를 극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선택할 때 정말로 똑똑하고 엘리트고 지성인을 뽑으려 했다면 예수님은 예루살렘 대학으로 갔어야 합니다. 조건 좋고 학벌 있고 똑똑한 아이들은 거기에 다 모여 있으니까. 그런데 어디로 가셨냐 하면 갈릴리로 가셨어요. 거기에 엘리트가 있을 리가 없고 지성인이 있을 리가 없고 미래에 대해 비전을 가진 사람이 거기에 있을 리가 없어요.

가난한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 배고픔이 무엇인가를 절절히 느낀 사람들이 모인 곳이 거기였습니다. 예수님이 거기를 가셨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제자의 조건보다 품성을 우선시했다는 것이죠. 정말로 인생을 살면서 실패를 경험해본 사람, 배고픔을 절절히 느껴본 사람들은 경거망동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살아가면서 배고픔이 무엇인지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겸손합니다. 살아가면서 뼈아픈 배고픔을 아는 사람들은 생각이 넓습니다. 남을 헤아릴 줄 압니다. 남의 입장을 배려할 줄 알아요. 예수님은 예루살렘 대학으로 안가시고 거기로 가셨어요. 그것은 예수님 시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처음 뵙지만 여러분들 속에 재벌의 자녀가 없어요. 제가 신학교에 가서 보니까 세상에 어쩜 저런 사람들만 모아놓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같이 가난해요. 가난하니까 거기로 오지 배부른 사람들이 왜 거기로 오겠어요.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정말 멋있게 생기고 잘생긴 사람이 신학교에 온 걸 보지 못했어요. 교회도 미인들이 들어오는 곳이 아니에요. 미인들은 가는 데가 따로 있어요. 노는 동네가 따로 있어요. 그러니까 오늘 여러분들 얼핏 보아도 죄송합니다만, 하나님이 그래서 우리를 불렀지 여러분들이 배우처럼 잘 생겼으면 왜 여기 있겠어요. 예수님이 갈릴리 가실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구요. 그게 2000년이 지났는데도 그 기준이 안 변해요.

하나님의 일은 지성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사람이 하는 겁니다. 지성인 엘리트는 땀흘려 헌신하려 안해요. 유사시에 십자가를 지겠다는 마음이 없어요. 우직해야 십자가도 지는 거지 베드로같은 사람이 십자가 지는 거지 가롯유다같이 계산이 빠른 사람은 희생이 필요할 땐 회피해요. 여러분 주변에 교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정말로 하나님 중심으로, 우리 주님 중심으로, 믿음 중심으로, 정말로 교회를 사랑하고 양을 사랑하는 분들은 교회에 휘말릴 것 같으면 다 털고 일어나요. 왜냐? 교회 때문입니다. 교회를 살리려고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교회 부서지거나 갈라지거나 끝까지 붙들고 파괴해요. 여러분 주위에 있어요. 그런 사람이. 보셔야합니다.

우리가 지금 목회하고 있는데 목회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셔야 합니다. 내가 정말 예수를 위해서 목회하느냐, 나를 위해서 목회하느냐? 목회자는 유사시 먼저 교회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를 살리는 방법이라면 내가 죽어야 합니다. 정말 교회를 은퇴할 때는 교회를 생각하셔야 해요. 내가 떠난 다음에 누가 잘 할 수 있을까? 이것을 생각하니까 떠날 때 교회가 파괴되는 거에요. 놔야 하는데, 놓아야 하는데 못 놓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문제가 생깁니다. 은퇴할 때 새로운 분들 다 문제가 생기잖아요. 그래서 목회자는 똑똑하면 안되고 무던해야 합니다. 손해도 좀 보고 져야 합니다. 항상 손해도 안 보고, 이기고 챙기는 것은 주님을 위한 목회가 아닙니다. 그게 예수님의 방법이에요. 예수님이 제자를 선택하는데 똑똑한 사람, 엘리트 지성인, 그런 사람들을 선호하지 않았어요. 그런 사람들은 유사시 십자가를 져야할 때 다 회피해요. 평상시 별 얘길 다 해도 십자가가 눈 앞에 오면 다 회피합니다.

세번째는, 예수님은 지성도 소중히 여기셨지만, 그보다 더 소중히 여기신 것은 열정입니다. 열정을 선호하셨어요. 갈릴리에서 고기잡는 방법은 그물이 세마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낮에 고기를 잡는 게 아니라 밤에 잡았습니다. 주로 10시부터 4시까지 잡았다고 합니다. 낮에는 그물이 흰색이기 때문에 그물을 던지느게 아니고 내렸습니다. 내리면 고기들이 들어와요. 걷어올리는 식이었어요. 그러니 낮엔 그물이 다 보이니까 캄캄한 밤에 그물을 내려놓는 거에요. 하나님이 그물을 던져라 하신 게 아니라 그물을 내려라 그랬어요. 그리고 기다리는 거에요. 고기가 들어오면 걷는 형식입니다.

성경을 보면 밤새도록 고기가 한 마리도 안 잡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켜보셨겠죠. 밤새고 안 잡히는데 그물을 올리고 또 올리고... 그 그물은 걷어낸 다음에 빨리 말려야지 그냥 놔두면 썩어요. 그런데 베드로에게 그물을 걷어서 오늘은 날이 밝으니 안되겠다 하니 그물을 정리하고 말리는 거에요. 그때 예수님이 거기 오셔서 저 깊은 데로 가서 한 번 더 내려 보라. 그러니 베드로가 또 갑니다. 기적의 분기점은 종이 한 장 차이에요. 우리들이 왜 기적을 못 이루냐 하면 기적이 될 만큼 갔다가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베드로 심정이었다면 지금 날이 밝았어요. 물이 맑잖아요. 가서 그물을 내리면 그물이 흰데 고기들이 낮에는 안들어 와요. 그런데 예수님이 와서 던져보라 하니 베드로가 '그물을 말려놨는데 고기가 잡힌다고 해도 이제 싫어. 지쳐서. 빨리 가서 잠자고 싶어.' 그러지 않겠어요? 그런데 또 가요. 갈릴리 호수가 길이가 21km인데 엄청 넓잖아요. 그 깊은 데로 가려면 노를 저어서 한참을 가야 합니다. 가서 그물 내리고 고기가 들어오고 다시 그물을 걷고 하면 열두 시나 되어야 돌아올 수 있어요. 그런데 또 들고 가는 거에요. 베드로를 설명할 때에 정신없는 사람, 생각도 없는 사람처럼 우습게 여기는데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 부분만 보아도 위대해요. 그러니까 그날 거기에 기적이 일어난거죠.

예수님이 제자를 불러들일 때 겸손한 사람도 선호하셨지만 정말로 중요한 건 열정을 보신 거에요. 여러분 목회 사명은 목적이잖아요. 은사가 있고 재주가 있는 사람은 열정을 관리 안해요. 그런데 그거 없는 사람들이 열정으로 살아요. 특기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나를 보고 은사가 뭐냐 그렇게 질문하면 곤란해요. 대답할 게 없어서, 은사가 없어서 죽어라고 이것만 하는 거에요. 목회하다가 내가 굶어죽겠나 하면서 차 타고 나갔다가 꼬리 내리고 다시 들어옵니다. 가려 해도 갈 곳이 없으니 제가 47년 목회하고 끝냈어요. 47년 목회하는 동안 조금도 갈등이 없었어요. 나는 이 길 아니면 갈 데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하더라구요. 갈 곳이 없는 사람은 마음이 편해요. 갈 곳이 많은 사람이 갈등이 많은 거야. 재주 많은 분들은 목회에 실패하는 겁니다.

목회에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지성보다 열정 가진 분들이 승리합니다. 맞을 거에요. 그게 성공하는 겁니다. 지성인들은 열정이 없어요. 몸을 사려요. 열정. 제가 성경에서 열정있는 모습들을 이렇게 말합니다. 마리아의 옥합입니다. 조금 조금씩 흘러내리게 하기에는 성에 안 차니까 깨부쉈습니다. 얼마나 시원합니까? 거기에는 조그만한 주저함도 없었습니다. 백퍼센트 흔쾌한 마음으로 쏟아붓는 거에요. 사람들은 뭐라 그랬지만 예수님은 기뻐하시고 만족하셨어요. 마리아의 모습에서 예수님은 기뻐하셨어요.

엘리사가 소 두 마리로 밭을 갈고 있을 때 엘리야가 찾아옵니다. 나를 쫓으라. 그러니 엘리사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더니 소를 끌고 쟁기를 지고 집으로 와요. 와서 소를 잡습니다. 그리고 쟁기를 불태워버려요. 뗄감으로 만들어 음식을 만들어서 동네 사람들에게 잔치를 하고 따라갔어요. 이것은 내가 이 길을 걸어갈 때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고향에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다짐입니다. 이미 쟁기도 소도 없어졌어요. 로마에 신물이 난 사람들이 배를 타고 칸타고로 넘어가요. 칸타고 섬에 도착하자마자 자기들이 타고 온 배에 불을 질러요. 여기에서 살 때 아무리 외롭고 고독할지라도 저 찌든 사회 로마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얼마나 열정이 있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역사를 만드는 거죠.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바울이 루스드라에 가서 전도를 합니다. 루스드라에 유대인들이 가서 방해를 해요. 사도바울이 까딱하지 않고 전도를 합니다. 그러니 상대방이 볼 땐 약 올라요. 조금 위축 받아야 하는데... 이웃마을에 있는 유대인들을 불러들여서 합해서 방해를 합니다. 그래도 까딱 안하고 복음을 전하니까 돌을 들어서 쳤어요. 죽었습니다. 시내에선 사람이 죽으면 안되잖아요. 그 시체를 끌어다가 버려놓고 돌무덤을 쌓았어요. 한참 후에 돌무덤 속에서 사도바울이 정신이 깨서 돌을 치우고 일어납니다. 터지고, 찢어지고, 부러지고, 벗겨지고, 그리고서는 읍내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다음날 더베로 떠납니다. 이렇게 성경은 말합니다. 거기에서 더베까지 20키로에요. 오늘은 아무리 가난해도 다 자동차가 있어요. 20키로 비탈길을 걸어서 갔겠죠. 터지고, 찢어지고, 피나고, 진물이 나고 힘들었겠죠. 하루 더 쉰다고 해도 누가 뭐라 합니까? 일주일 쯤 쉬어간다 하면 누가 뭐라고 합니까? 그런데 그 다음날 떠났어요.

여러분에게 이런 열정이 있으십니까? 제가 목회를 해보니 목회는 재주도 소중하고, 설교 잘하는 것도 소중하고, 학벌도 중요하고 다 좋은데 그 모든 것보다 더 좋은 건 열정입니다. 성도들은 열정있는 목사님의 모습에서 은혜를 입고 그 목회자를 신뢰하고 그를 존경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업하는 사람들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정주영이라는 회장이 있는데 참 존경스러워요. 50년 전에 그분이 “내 손으로 만든 자동차가 5대양 6대주를 누비고 다니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말했었어요. 50년 전에 아무것도 없을 때요. 그런데 50년 만에 5대양 6대주를 현대차가 누비고 다닙니다. 그냥 앉았는데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김우중이라는 분이 아시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고층 빌딩을 짓겠다고 했던 그때에 미국과 일본의 건설회사들은 비웃었어요. 한국의 기술을 가지고 무슨 고층 빌딩을 짓느냐 그러니까 김우중이 했던 말이 "당신들은 못해도 우리는 할 수 있다. 왜냐 당신들은 못하지만 우리는 24시간 일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 그러고 해냈잖아요. 에디슨이라는 사람도 2,000여 개의 발명품을 발명했다는데 하나 만들 때마다 평균 천 번 기도했데요. 그래서 일 천번의 기도 당 하나의 발명품을 개발했데요. 우리나라 양궁 참 잘하잖아요. 다른 나라는 보통 하루에 100개씩 연습하는데 우리나라는 500개씩 연습한데요. 못 당하지요.

충청남도 사람 이공주. 충청도 사람이 느리다고 하는데 이 사람이 제일 빨라요. 이 사람은 매일같이 40키로씩 뛰었어요. 매일 뛰어서 지구를 5바퀴 돌았데요. 박태환이라는 수영선수는 14살 중3 때 매일 1,500미터 수영연습을, 50미터 트랙을 150번 왕복한 겁니다. 우리는 목회를 하면서 열정을 불태우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합니다. 제가 보니까 목회 잘하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특별한 게 없는데 잘하세요. 그게 열정이에요. 하나님이 열정을 불태우는 그곳에 고기가 잡히게 하시는 거에요. 이게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공짜가 아니에요.

여러분. 오늘은 열정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저에게 하소연하면서 전화를 했어요. "목사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제가 출장나와 있는데 권사님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교회에 있는 부목사에게 전화를 해서 권사님이 돌아가셨으니 빨리 가서 준비하라"고 그랬더니 부목사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 "목사님, 오늘 휴일인데요" 하더랍니다. 월요일 목회자들이 쉬잖아요. 전화해서 가보라니까 "목사님, 오늘 휴일인데요." 그렇다고 저한테 전화 해서 속풀이를 하는 겁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신세대 목회자들이 대부분 이런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앞으로가 좀 걱정입니다. 그래서 요즘에 최고 인기 직업이 교사인데 남자 젊은이들이 최고로 여기는 신부감 제1위가 예쁜 여교사랍니다. 2위는 덜 예쁜 여교사. 3위는 못생긴 여교사요.

영국에 가디언즈가 근래에 젊은이들이 용기도 없고 모험심도 없으니까 10가지를 제시했어요. 1. 북경에 가서 대륙열차를 타봐라. 그걸 타보면 세상에 대해 이러저러한 얘기를 못 할 것이다. 우리나라 서울에서 ktx를 타고 부산에 가면 3시간도 안 걸립니다. 그러니까 말이 많다구요.
2. 페루에 가면 마추픽추라는 유적지가 있는데 5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호흡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 가보아라. 그리고 역사를 알고 깊은 세계를 이해해 보아라.
3. 남아공에 있는 브로그다리에서 번지점프를 해보면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더 큰 것이 생겼어요, 마카오에 가면 마카오 타워가 있는데 높이가 300미터입니다. 250미터 지점에 번지점프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이드한테 물었더니 남녀 성비가 7:3이래요. 70%는 여성이고 30%는 남성이라고. 그러니까 가슴이 졸아드는 거에요. 목회를 해도 큰 목회 꿈이 없고 자꾸 줄어드는 거에요. 그러니까 현실이 무섭고 미래가 무섭고 두려운 거에요. 모험 발휘를 못하는 거죠. 그런데 정말 모험을 감행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베드로가 가서 기적이 일어났듯이 지금도 기적이 일어나요.

우리 교회 젊은이 하나가 참 착실해요. 요즘같이 어려울 때 대학 졸업해서 대기업에 취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표를 던지는 거에요. 왜 던졌냐고 물어보니 너무 일이 많아서 주일도 못지킵니다. 예배를 드릴 수 없어요. 예배드리기 위해서 예배드릴 수 있는 직장을 잡기 위해서 사표를 냈다고 합니다. 상상이나 됩니까? 그리고서 조금 기준을 낮춰서 새로운 직장을 찾아갔어요. 가서 면접을 하는데 대기업을 왜 그만두었냐는 질문에 그 친구가 나는 기독교인이라 주일에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그 회사는 너무 바빠서 예배를 드릴 수 없어서 사표를 내고 예배드릴 수 있는 곳으로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요즘엔 그렇게 대답하면 될 것도 안 되요. 이 녀석이 요령없이 대답했는데 합격했어요. 왜 합격을 했느냐? 그 면접관이 장로였어요. 또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신다니까요. 이 일이 내 일이냐 하나님의 일이냐 따져야 하는 거에요. 내 일을 그렇게 하면 실패하지만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면 하나님이 왜 가만히 계시겠냐 이 말이에요.

어떤 녀석이 기도해 달래서 이유를 물어보니 취직이 안 된다고 합니다. 이력서 120통을 냈는데도 취직이 안 된다는 얘기를 듣고 이 젊은이가 얼마나 거리를 헤메고 있었을까 얼마나 고민이 컸을까... 그래서 아주 간절하게 기도를 해줬어요. 취직시켜 달라고. 그리고서 일주일 만에 또 왔어요. 그래서 왜 또 왔냐고 물어보니 “목사님, 안 되겠어요, 학원에 다녀야겠어요.” 하는겁니다. 이력서를 쓸 때 자기소개서를 잘 쓰게 해주는 학원이 있다는 겁니다. 거기에 다녀야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그때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물었어요. “야, 지금 네가 네 인생 가운데에 가장 어두울 때, 힘들 때, 앞이 캄캄할 거야. 미래가 암담하지? 그럼 네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어려울 때 네 하나님은 너에게 누구냐? 이렇게 힘들 때 하나님은 너에게 누구시냐? 너가 그동안 누구를 믿어왔냐? 내가 너라면 120통 이력서 써들고 돌아다니는 정열을 가지고 차라리 산에 가겠다. 가서 일주일 금식하겠다. 그렇게 몸부림 쳐보겠다. 일주일 금식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럼 나는 열흘로 연장하겠다. 열흘 했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20일로 연장하겠다. 20일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나는 차라리 나를 죽이세요. 하고서 나는 그 곳에 있겠다. 그게 옳은 방법 아니냐...” 여러분 목회하다가 안될 때 하나님께 그렇게 해보셨어요? 해 보셨는데도 안 됩니까? 이거는 남의 얘기가 아니고 나의 얘기입니다.

우리 그물이 여전히 빈 그물이라고 그물을 금실로 짜면 뭐합니까? 고기가 안 잡히는데. 장비를 최신장비로 갖추면 뭐합니까? 교회를 잘 지어놓으면 뭐합니까? 사람들이 안 오는데. 예수님은 3년 뒤에 대성공을 거두세요. 어떻게 성공하느냐, 3년 후에 이 우둔하게 생겼던 제자들이 전부 자기 몫을 다했어요. 다 순교했어요. 처음에는 제자들의 모습이 참 한심하잖아요. 그런데 다 순교했어요.

또 하나는 예수님이 기도를 많이 하세요. 지속적으로 기도하세요. 낮에는 사역을 하고 저녁에는 산에 올라가세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신데 산에 가서 기도를 해요.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에도 산으로 가요. 하나님의 아들인데도 이게 소위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역설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참 믿음이 좋아요. 산에 갈 필요도 없어서 안 갑니다. 산 기도를 잘 안갑니다. 그래서 오늘 교회가 목회자 따라서 신자들도 기도합니다. 기도하는데 기도가 없으니까 무슨 기도가 나오느냐 하면 기도 없는 말만 나와요. 기도와 상관없는 말들이 나오니까 형식화에 빠지는 겁니다. 교회 암이 있어요. 교회의 암이 무엇이냐 하면 형식화에요. 교회가 형식화 되면 본질을 가지고 다투고 싸우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고 비본질을 가지고 싸우게 됩니다.

오늘 기사를 보니까 어느 교회에서 세족식을 했데요. 뜻은 좋았지요. 그런데 논쟁이 붙었데요. 세족식을 하는데 오른발부터 씻어야 하나, 왼발부터 씻어야 하나. 이것 때문에 싸움이 난 거에요. 싸움이 나서 세족식은 미루고 싸웠데요. 그러다가 오른발부터 해야 한다는 측이 갈라져 나왔데요. 그 사람들이 세운 교회가 오른발 교회래요. 오늘날 한국교회가 싸우는 이유들이 다 이런 식이에요. 본질은 없습니다. 비본질을 가지고 싸웁니다. 우리 가슴을 열고 생각해봐야 해요. 내가 지금 주님의 목회를 하고 있나, 내 목회를 하고 있나. 그러면 답이 나와요.

열왕기상 22장에 보면 북왕국의 왕이 아합이에요. 남왕국의 왕은 여호사밧입니다. 서로 사돈 관계입니다. 여호사밧이 아합한테 들러요. 그때 북왕국이 전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선지자들을 불러서 묻습니다. 전쟁을 해야 하는데 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이길지 질지. 그러니 이구동성으로 이길 테니 가라고 하나님께서 그런 계시를 주셨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여호사밧은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그들의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이게 아닌 거에요. 그래서 아합에게 이람들 말고 또 없냐 물어보니 한 놈이 있긴 한데 그놈은 항상 나에게 기분 나쁜 소리만 하기에 부르지도 않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 여호사밧이 "그런 말하지 마소서. 그를 부르소서" 그래서 불러온 게 미가 선지자입니다. 미가에게 계시를 받았습니다. 보니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저기 저 아합을 누가 꾀어서 전쟁터로 나가 죽게 할꼬?" 그러시니까 천사 하나가 거짓 선지자의 입에 거짓 예언을 넣어 그를 전쟁터로 유인해 죽게 하겠습니다. 내가 이런 계시를 받았노라고 그러니 거짓 선지자들 우두머리 히스기야가 와서 미가의 뺨을 때립니다. "언제 너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더냐"라고 하니 미가가 대답하기를 "네가 골방에 들어가는 날 보리라"고 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려면 골방에 가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시끄러운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소리를 못 듣고 시끄러운 소리만 듣고 살아요. 그러니 우리들에게 계시가 전달이 안 되는 거에요. 깊은 영성이 있는 계시가 없어요. 우리들의 모습이에요. 그리고 큰 교회를 만들려고 더 욕망을 불태우는데 안 되니까 수다스러운 겁니다. 음식 솜씨 없는 사람이 미원을 팍팍 치듯이 목회의 깊은 뜻을 모르는 사람이 수단 방법을 모르니 부작용이 생기는 겁니다.
 교회 짓는 게 먼저냐, 교회 채우는 게 먼저냐? 다들 아시잖아요. 내 목회를 하다 보니까 답이 거꾸로 바뀌는 거에요. 오늘 큰 교회들마다 1세대가 물러가고 2세대가 와요. 1세대 목회하던 분들은 학벌이 없어요. 학위도 없고 컴퓨터 다룰 줄도 몰라요. 목회 잘하는 어느 목사님이 핸드폰 가지고 봐달라고 해서 보니까 문자가 너무 많이 쌓여서 핸드폰 기능이 정지가 되어버렸어요. 이게 왜 정지가 되었는지 모르는 거에요. 문자를 지우는 걸 모르는 거에요. 지우는 방법도 알고, 쓰는 방법도 알면 더 좋지만 목회만 잘하면 됐다. 당신은 목회를 잘하니까 되었다. 왜 잘하느냐, 일주일에 반은 기도실에 들어가요. 설교 그렇게 잘하지 못해요. 그런데 기도실에서 받는 계시, 바로 그걸 전하는 겁니다.

오늘날도 히스기야와 같은 목회자들이 많아요. 젊은 목회자들 1세대 목회자들이 물러가고 2세대 목회자들이 학위 가졌지, 설교 잘하지, 전자정보 인터넷에 통달했지. 설교할 때도 우리처럼 원고를 놓고 하는 것이 아니고 기계를 놓고 합니다. 그런데 왠지 사람들이 전임 목사님보다 정보가 훨씬 풍부한데도 불구하고 은혜를 못받는 거에요. 그 큰 예배당을 못 채워요. 이건 우리 교단 문제만이 아닙니다. 합동 측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번 모임은 전부 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굉장히 어리석게 보이셨어요. 이게 역설입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출중함에도 능력을 행사하지 안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뛰어내렸더라면 진동이 일어났을 겁니다. 참 멋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조차 없었어요. 예수님이 신적 권위로 물위를 걸어, 귀신을 내쫓고, 죽은 사람을 일으키고, 영적인 세계를 통달했는데 무엇이 부족합니까? 그런데 사용을 안하세요. 어떤 목사님이 40일 금식기도 들어가면서 기도제목이 치유은사 달라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주었을까요? 안 주었을까요? 우리들의 수준이 그 정도면 안 되는거죠. 40일이 아닌 80일을 해도 안주십니다. 그걸 주셨다가는 큰일납니다. 안 주시는 거에요. 그걸 달라고 할 필요까지도 없는 거죠. 그래서 이게 역설이에요.

여러분, 역설이라는게 정말 재밌습니다. 암이 오잖아요. 암을 아무리 이기려 하면 져요. 대부분 암 때문에 지는 분들은 암을 이기려 해서 지는 겁니다. 수녀 이해인씨가 암이었는데 이런 말을 하더군요. “네가 오죽 갈 곳이 없으면 나에게까지 왔겠냐? 나하고 같이 살자.” 그래서 그분이 암을 달래고 어루만지고 위로해 주었데요. 그런데 어느 날 이별했데요. 그게 암을 이기는 방법이에요. 역설의 방법. 강한 사람이 이길 것 같아요? 강한 사람이 끝내는 실패하는 거에요. 부드러운 사람이 질 것 같은데 끝내 이기는 겁니다.

좋은 예가 혀하고 이하고 싸우면 누가 이기느냐입니다. 누가 이길까요? 나는 지금 70평생 살면서 이를 다시 해 박은 사람은 봤어요. 이는 갈아 끼웁니다. 혀는 갈아 끼는 사람이 없잖아요. 열 남매 낳은 어머니 젖을 한번 볼 수 있음 보세요. 열 번째 낳은 아이는 등에 업고 있다가 젖 먹이려면 안을 것도 없어요. 어머니들이 처녀 때는 통통했던 젖가슴이 남아 있는 게 없는 거에요. 그 안에 소중한 것들은 다 빼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아프면 또 본인이 아프려고 해요. 그게 여성의 힘이에요. 남자들이 아내를 연약하게 보다가 다치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아내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데....

예수님은 33년 살고 사역을 딱 3년 하셨어요. 대성공 거두셨어요. 그 방법이 무엇이냐. 바로 역설의 방법입니다. 죽어야 사는 것. 죽어야 삽니다. 어떤 경찰관이 정년이 3개월 남아서 은퇴하기 전에 검진을 받았더니 암이래요. 3개월 밖에 못 산데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3개월 선고를 받으면 지레 겁먹고 두 달밖에 못 살아요. 3개월을 못 넘기고 죽으면 병사 처리가 돼서 퇴직금을 못 받아 걱정이 됐어요. 고민하다가 기왕 죽을 거 멋지게 죽자 다짐하고는 한직에 있다가 강력반으로 자원해 들어갔습니다. 매일같이 흉악범들을 잡으러 다녔고 어느 날인가 마약사범들을 쫓는데 두목하고 막다른 골목에서 만났어요. 마약 두목이 권총을 든 겁니다. 그래서 이 경찰관이 때가 왔도다 하면서 버티고 서서 쏘라고 했어요. 쏘라 하니까 못 쏘는거에요. 나중에는 사정했어요. 제발 좀 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래서 마약사범 두목이 이런 사람은 처음 봤다며 권총을 떨어트리고 잡혀서 유치장에 들어갔습니다. 사무실에 와 보니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검진 결과가 오진이었다는 것입니다.

죽으려고 하니까 안 죽는 거에요. 이걸 역설이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방법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이 말씀을 추천하신 겁니다. 여러분 제가 목회 끝내고 보니까 절대 교회에서 이기려고 하지 마세요. 이기려 하면 집니다. 져야 이깁니다. 더 얘기 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역설의 말씀을 예수님은 역설로 승리하셨어요. 여러분 대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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